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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이야기/지형학

낙동강삼각주

소선생 2020. 2. 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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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삼각주는 구포 부근까지 들어왔던 만이 낙동강의 토사로 메워짐으로써 형성된 지형이다. 낙동강은 토사유출량이 많고, 하구에서의 대조차가 약 1m에 불과하다. 낙동강 삼각주는 주로 하천에 의해 형성된 부분과 삼각주가 바다로 성장해 나갈 때 파랑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형성된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낙동강은 양산협곡을 벗어나면서 두 개의 큰 분류로 갈라지며, 이들 분류에서 다시 2차적인 분류들이 갈라진다. 그리고 일련의 분류는 삼각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대저도, 맥도, 일웅도, 을숙도 등의 하중도를 에워싸고 있다. 이들 하중도는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형성되어 고구마처럼 생겼다. 

 낙동강 삼각주는 최전방에 그림 4-34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서방향의 여러 사주가 가로놓여 있는 점이 특이하다. 사주는 바다로 유출된 모래가 파랑에 의해 육지쪽으로 밀어붙여져서 형성된 것으로 이 지역에서는 이것을 '등'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사주가 형성되면 그 뒷부분은 토사가 빨리 쌓여 간석지로 변하며, '대마등'처럼 간석지 안에 갇히는 사주는 파랑에 의한 토사공급의 차단으로 침식을 받아 축소되기 시작한다. 명호도에서는 열촌이 드러선 비치리즈도 볼수 있다. 그림 4-34는 사주와 간석지가 서쪽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쪽으로 성장하는 것은 연안류가 서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낙동강은 1987년에 하구둑으로 막혀버렸다. 그러나 그 후에도 하구의 전면에서는 간석지가 넓어지는 동시에 등들이 새로 생겨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강물이 바다로 유입할 떄는 토사가 하구에서 바깥으로 멀리 제거된다. 그러나 강물이 차단된 이후에는 바다로 제거되었던 토사를 파랑이 육지쪽으로 활발하게 밀어부치기만 하기 떄문에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짐작된다. 1930년대에 죽림강 또는 서낙동강이 '녹산수문'으로 막혀버렸을 때도 그 전면에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났었다(그림4-34). 

 오늘날 거의 전부가 부산광역시에 들어 있으나 여전히 김해평야라고 불리우는 낙동강삼각주는 거의 갈대만 무성하게 자라던 습지였다. 김해평야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것은 1930년대에 대저제방을 축조하고 낙동강을 동쪽분류로만 흐르게 하면서부터였다. 낙동강이 두 개의 큰 분류로 갈라지는 곳에 형성된 대저도 상단부의 자연제방은 해발고도가 약 8m로 전체 삼각주에서 가장 높은데, 이곳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과수재배가 활발했고, 지금도 배 과수원이 조금 남아 있다. 명호도는 고도가 이보다 낮지만 바다에서 가까워 홍수피해가 적었으며, 지면이 다소 높은 비치리즈에는 조선시대에도 취락이 들어서 있었다. 명호도에서는 토양이 사질이어서 대파가 많이 재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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